요즘 그다지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료식 때 받은 농협의 상에 대한 부상은 정말 지지리도 시대에 역행하는 '종이 사전'으로,
내겐 정말 필요 없기 때문에 중고나라에 올렸다. 물론 사전의 단가가 매우 비싼 것은 사실이나, -43,000원이 정가이다- 요즘 누가 사전을 쓰는지?
종이사전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도 다수 있으나 내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여,
받는 즉시 중고나라에 올렸다. 그러나 사실 팔릴 이유도 거의 없어 3주일 째 썩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간만에 포켓 당구를 하러 노원에 잠시 나왔는데,
한 구매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사전을 사고 싶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내가 사전을 25,000원에 올렸는데 그 사람이 15,000원에 사고 싶다는 게 아닌가.
물론 요즘 중고 전자사전 옛날 건 3만 짜리도 있고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므로 비교하면 안될 터,
첨에 흥정하는 건 줄 알고 순순히 20,000원을 불러줬더니 기필코 15,000원에 사겠단다.
나도 약간 오기가 나서 그럼 18,000원은 안 되겠냐, 라고 물어 보니
이 사람이 사람을 약간 무시하는 투로 '꼭 그렇게 받아야겠냐'라는 식으로 문자를 보냈다.
기분이 나빠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내 돈으로 산 것이니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 하지 않겠냐' 라고 보내니
'정 그렇다면 16,500원에 사겠다'라고 약간 비웃음을 섞는 문자를 보냈다.
(사실 문자야 감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웃는 건지, 그냥 습관인지는 알 수 없긴 하지만.)
다혈질일 사람은 15,000원에 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16,500원에 팔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노원이라 집도 멀고 하여 30분 정도 전에 연락을 달라했더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의외로 별로 투정이 없어서 일단 빨리 집에 가서 사전을 집어 들고,
하계로 와 거래를 했다.
처음 본 그의 인상은 의외로 중후한 3~40대 회사원의 이미지였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장에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잠시 사전의 내용물을 보더니, 이번 년도게 맞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정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기에, 맞고 정말 새 것이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해줬다.
생각보다 물건이 정말로 괜찮았던 걸 눈으로 보고 나서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지,
그냥 엿 먹으라고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너무 싸게 산 것 아니냐, 라고 나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문자 내용이 불쾌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흥정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실 1만6천이라도 받는 게 감지덕지라..)
'그냥 뭐.. 흥정해서 받은 거니까 어쩔 수 없죠'라고 말해주었다.
웃음을 지으면서 돈을 받고 물건을 주고 집으로 왔다.
사실 요즘 종이 사전 찾는 사람도 적고,
그다지 비싼 돈을 받고 팔 수도 없을 것 같아 조마조마 했는데,
이게 어딘가, 라는 생각이라 딱히 불쾌하지 않고 기분은 좋기만 했다.
집으로 오고 나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좋은 책 있음 또 올려주세요. 담엔 안 깎을게요. 잘 들어가요"
아무래도 거래하며 한 말은 진심이었나 보다.
약간 기분이 나빴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도 거래의 일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그래도 문자 한 통으로 기분이 좋아진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의 인상을 글로는 표현할 수 없으니 공감대 형성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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