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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Story/Dream

Disciples of Babylon , Start Something!

"으음.."

시리아는 눈을 떴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덥거나 춥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머리가 찡했다. 어젯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시리아는 조용히 되뇌었다. 그러나 머리가 찡한 것도 잠시, 무엇인가 힘이 나고 무엇인가 자신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리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나 말고 여섯 명의 제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과 생과 사를 함께했었고, 분명히 바빌론의 마지막 가르침까지 무사히 완수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소녀가 생각났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기억은 난다. 나와 같은 또래였거나, 한 두살 아래 정도의 소녀.. 어둠에 가려졌지만, 미소는 기억이 났다. 광활한 초원에서, 앞서 나간 다섯 제자들을 뒤로 한 채 숨이 헐떡 거리며 지쳐 있던 그를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아준 것이 그 소녀였다. 누군지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 소녀의 얼굴부터 그림자가 드리워져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포근한 미소는 시리아를 웃게 만들었다. 또 한번은 장터 내에서 시리아가 소녀에게 블랙 티(Black Tea)를 사준 기억도 났다. 소녀는 매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리아는 절로 미소를 지어버렸다. 그리고 한 가지 정의가 내려졌다. 그녀를 찾으러 가야겠다. 그녀를 찾고 나서 생각하자. 어쨌건 그녀도 바빌론의 일곱 제자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은 그녀를 찾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난 아무 것도 없다'가 제일 먼저 내려진 생각이었다. 일단 시리아는 주섬주섬 동네 사람들에게서 빌린 갑옷을 입고 나왔다. 허름한 갑옷이었지만, 중세시대의 갑옷처럼 촌스럽지는 않았고, 리테일 갑옷(Retail Armor)이라, 일단은 세련되었다. 가죽처럼 보였지만 성능은 강철 이상인데다가, 가격도 싼 편이어서 많은 모험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옷이었다. 마을이 다소 멀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일을 자주 도와줬던 터라, 갑옷을 빌리는(또는 빌리고 그냥 갖는 것)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일단 검 정도는 필요 없었다. 바빌론과의 짧은 만남 후에 알게 된 것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체술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왠만한 호걸들은 그저 체술로 가볍게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리아는 다시 한번 고민을 해야 했다.

 

"일단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것들은 갖춰진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조용히 혼잣말을 해봤다. 이 곳 엔슬롯의 북동쪽은 이렌가드로 가는 길이었고, 엔슬롯의 서쪽 길은 엘가로드로 가는 길이었다. 일단, 엔슬롯의 남쪽에 있는 로레가드로 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이제 그 곳은 네크론의 지배를 받아 예전처럼 평화로운 드워프(Dwarf)들은 없고 사악한 악령들만 존재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일단 그는 지도 상이 있는 마을 촌장에게로 갔다.

 

"실례합니다~ 촌장님~ 안 계세요?"

시리아는 가능한 한 '공손한' 태도를 갖추면서 마을 가장 높은 촌장 집으로 찾아갔다. 이윽고, 늙은 노인이 그를 배웅했다.

 

"아, 그 젊은 청년이로구먼. 무슨 일로 왔나?"

"그..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 촌장님 마을이잖아요? 그래서 조금 지도를 보고 싶어서요. 제가 약간..여행 같은 걸 해야할 거 같아서요."

"지도라면 여기 있네만, 앞으로 자네의 도움을 바라는 건 힘든 일이 되버렸구먼"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을 이었다. 젊은이가 떠나간다는 게 아쉬웠겠지만, 그래도 노인은 심하게 끌진 않고 지도를 보여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엘가로드의 수도 아렌(Aren)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6개월 간 엘가로드와 네크론 진영이 대치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크게 끌리는 지역은 아니었다. 이렌가드도 마찬 가지였고, 일단 엘가드는 너무 멀었다. 그리고 이윽고 눈을 돌린 곳은 로레가드였다. 로레가드는 수 천년 동안 드워프들이 그 지방을 지배해 왔고, 로레가드의 수도 도하(Doha)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가 떠 오를 것도 같았다. 시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중얼거렸다.

 

"흐음.. 위험하더라도.. 일단 몸이 시키는 대로..?"

이윽고, 결정해버렸다. 그냥.. 좋지많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뭔가 있을 만한 그 느낌을 거부하기 싫었음이 제일이라.

 

"어엄.. 도하로 가야겠어요. 촌장님"

"에에? 도하? 어디더라.. 로레가드의 수도였지? 아아, 그 곳도 꽤 괜찮지.. 아니 잠깐, 자네 지금 도하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자네가 상상 하는 친절한 드워프들은 이제 옛날 얘기야! 그 서방의 네크론이라는 자가 그 곳을 점령했다는 걸 모르는 겐가?"

"으음.. 그래도 제 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젊었을 때의 촌장님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절대적인 미소년 형을 갖추고 있는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과거를 회상하지 않을 어른은 없다. 촌장도 옛날엔 모험심이 많던 때가 있었다. 그게 비록 죽음을 향하더라도, 일단 가고 싶다고 명심한 그 곳임에 보내줘야 함이 제일임을 촌장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깊은 고민 끝에 촌장은 말했다.

 

"그래..나도 분명히 젊었을 때는 군에서 일했었고.. 그럼 잠시만 기다려보게."

촌장은 주섬주섬 안방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꺼내왔다. 가죽 장갑이었는데, 손바닥과 손등 부분만 가려주는 장갑이었다.

 

"이게 뭐죠? 촌장님?"

"내가 군에 있을 때 나와 생과 사를 같이 했던 물건이지. 아주 신비한 힘이 깃들여져 있어.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지만, 이제 내 밑으로는 모두 딸 밖에 없다네. 물론 여장부는 내가 생각하기 싫고 말이야. 그래서 자네에게 주겠네. 이 가죽장갑을 끼고 잘 생활해보도록 하게. 검술을 익히던, 체술을 익히던 장갑은 자네의 마음에 반한 힘을 낼 것이야."

 

시리아의 얼굴이 삽시간에 활짝 펴졌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라.

"우왓! 그냥 주시는 건가요?"

"물론일세.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져가도록 하게."

"그럼 잘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딱 맞네요."

정말 다행히도, 장갑은 마치 맞춰진 것 처럼 단단히 조여들었다. 노인은 말 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그럼 가볼게요. 어차피 이쪽에서 남쪽으로 가면 로레가드로 가는 길이 보이겠죠."

시리아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노인은 뒤 돌아가는 소년을 향해 물었다.

 

"아 그런데, 자네에게 도움은 많이 받았건만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구먼. 이름이 뭔가?"

"시리아라고 합니다. 누군가 제게 붙여줬지요. 수호의 시리아."

노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런가.. 그래.. 앞으로 다른 제자를 찾으러 나가는 건가?"

"아, 네 그렇ㅈ.. 네?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닐세. 부디 자네에게 신의 은총이 깃들기를.."

"아, 네! 열심히, 목적을 찾아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을 황급히 뒤로하고, 시리아는 길을 나섰다. 다행히도 나침반은 갖고 있어서, 남쪽을 찾는 데엔 그 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남이 어찌나 길었던지, 정오에 머리 위에 있던 태양은 이제 자신과 얼굴을 마주할 만큼 내려왔다.

 

"자 그럼 출발해볼까..라곤 하지만 일단 노을이 져 버렸으니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해야 하려나.."

일단 시리아는 그 근방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소년이었지만,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은 터라 누구에게 '재워달라'라고는 말할 상대가 없다. 뭐 이건 애초부터 예상을 했던 일이었으므로, 서둘러 한 적하고 넓은 곳을 찾아다녔다. 이윽고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넓지만 평평한 땅을 발견했다. 불을 지피고 그는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난 48시간 이내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 바빌론을 만났다는 것은 희대의 일이다. 자신이 바빌론의 제자라는 것도 희대의 일이고 말이다. 그리고 로레가드로 가야한다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도 희한한 일이다.

 

그렇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진 이 곳에서 다소 추웠지만 잠은 계속 왔다. 깊은 고민을 뒤로하고 일단 그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으음.. 뭐건 간에 일단 가보면.."

마침내 그는 잠에 푹 빠져버렸다. 추웠고 이불도 하나 밖에 없었지만 포근한 잠이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소년과 소녀는 다정하게 성 안을 뛰어 다녔다. 여전히 소녀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여지지 않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이 그 소녀를 좋아한다는 것 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녀도 시리아를 진심으로 대해줌이 눈에 보였고, 그를 좋아한 것 같다. 그러나 꿈은 곧 소용돌이 쳐 전쟁 한복판으로 바뀌었다. 마법과 검의 챙강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시리아는 소녀를 지키고 있었다. 소녀는 수도복 같은 것을 읽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중얼 거리더니 이윽고 외쳤다.

 

"아르멘다, 아르세, 헬 파이어!"

우리가 항상 생각하던 헬 파이어는 없고, 불로 이루어진 용의 머리가 크게 솟음 쳤다. 용은 사신들을 한꺼번에 집어 삼켜서 폭발했다. 시리아는 소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시리아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왕 같은 존재와 싸우고 있었는데,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듯 싶다.

 

"크윽…"

시리아는 피를 토했다. 그는 어떠한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장갑이다.

 

"그쯤 해두십시오. 당신은 날 이길 수 없습니다. .. .. ... 단장님"

어둠 속에서 그의 미소만이 엿보였다. 뒤엔 검은 날개가 양쪽으로 하나씩 달려있었는데, 고위급이라는 것은 그냥 봐도 척이다.

 

"어서 그녀를 내 놓으십시오..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온화함의 미소는 순식간에 잔인함의 미소로 엿보였다. 그 틈에,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

 

"자랑스럽고 매우 영광스러운 우리 앞에서(Proud and so glorious standing before of us), 우리의 검은 밝은 하늘에서 더욱 더 빛날 것이니(Our swords will shine bright in the sky), 우리가 태양의 나라에서 자랑스레 다가올 때(When united we come to the land of the sun), 우리는 용의 심장과 함께 진군하리라!(With the heart of a dragon we ride)"

헬 파이어는 용의 얼굴이 나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5배나 큰 용이 실체를 드러내며 그 소녀의 뒤에 나타났음에, 그 주문이 얼마나 고위급 주문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소녀는 떨고 있었다. 눈에는 초점을 잃어갔으나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터였으리라.

 

"… 안돼!"

시리아의 절규만이 들렸고, 그 사내가 움찔하는 것 만이 보였다. 이윽고 용은 사내에게 달려들었고, 용은 사내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꿈에서 깨버렸다. 꿈에 깨서 절규하지는 않았다. 그저 거친 숨소리가 난무했는데, 식은 땀은 마치 그가 마치 몸을 씻고 제대로 물기를 말리지 않은 채 이 곳에 누운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귓볼에서의 작은 S는 시리아 몰래 빛을 발하고 있을 터였다.

 

 

/후기/

역시 이번에도 짧습니다. 이번에 소녀가 쓴 주문은, DragonForce의 Heart Of a Dragon 이라는 곡의 처음 네 줄입니다. 해석이 약간 달라질 수 있는데, 이건 제가 영어를 잘 못함이 제 첫 번째 이유이며, 주문처럼 멋지게 보여야 함이 두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화에서 시리아는 도하라고 불리는 곳으로 출발하려고 마음을 먹습니다만, 도하라는 곳은 사실 아라비아 반도의 동부 카타르반도 동안에 있는 카타르의 수도입니다. 아렌이라는 엘가로드의 수도는 가상의 명칭이며, 일단 세계관만 따온 것이기 때문에 기타 수도들은 제가 적었습니다. 물론, 제목의 무엇인가를 시작한다 또한 Lostprophets의 2집 앨범 이름입니다. 꼭 이런 걸 해보고 싶었답니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제가 작가가 되어보고 싶었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글을 쓰고, 다시 독자가 되는 순간,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다시 한번 읽어도 정말 짧습니다. 남들이 보면 네 시간동안 쓴거라고는 추호도 믿지 않겠지요. 그러나 피곤해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